동네의 탄생…“평범함에서 빛나는 특별함이 있죠” 쌍리단길 첫 가게 인터뷰

[비즈리포트] 김용후 기자 =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길에 작은 가게가 들어선다. 가게는 독창적인 메뉴나 재미있는 인테리어로 동네 주민에게 말을 건다. 누군가는 한번쯤 들어가 볼 테고, 괜찮은 가게라면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모인다. 주변에 가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난다. 젊은이들이 찾는 핫플레이스 상권이 탄생하는 과정이다. 한 가게의 콘텐츠가 동네의 온도와 색감까지 바꾼다.

서울의 대표적인 베드타운으로 핫플레이스와 거리가 멀어보이던 서울 쌍문역 인근 이른바 ‘쌍리단길’이 생긴 것도 이런 과정을 거쳤다. 쌍리단길에 처음 들어선 청년 음식점이 바로 노말키친이다. 테이블 3개만 놓은 작은 가게가 2017년 초 생긴 뒤로 태국음식점, 일식집 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지금 이 골목과 인근엔 맛집으로 불리는 곳만 10여 곳에 이른다. 노말키친 김도욱 대표(32)는 어떻게 이렇게 밋밋하던 골목에 가게를 차리게 된 것일까. 무슨 생각이었을까.

평범함 속 특별함 찾아…그가 시흥에서 올라온 이유

치킨이나 돼지고기처럼 흔한 식재료를 다뤄서 평범, 노말(Normal)하다는 말을 썼죠, 흔한 재료로도 독특하고도 새로운 맛을 선보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마침 가게를 할 때 유행했던 단어가 바로 ‘슈퍼 노말(Super Normal)’이었어요. 평범함 속에도 감동과 특별함이 숨어있다는 뜻예요.

그 설명이 절묘하게 이 골목에 어울린다. 가게가 들어서기 전 골목도 그랬다. 밋밋하고 평범한 길. 그렇지만 누군가에겐 따뜻한 감정과 정서가 녹아 들어있는 길이었다. 김 대표의 눈에도 그게 보였을까. 그때만 해도 그는 바깥사람의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김 대표는 시흥에서 나고 자랐다. 가게를 시작하기만 해도 이 골목과는 아무런 연고도 없었다고. 그게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동네에 무슨 매력이 있어서?

Q. 음식점을 열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A. 요리를 늘 좋아했으니까 가게를 한다면 음식점이라고 생각했죠. 생각이 구체화된 건 대학 때 레스토랑에서 조리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예요. 그때 요리하는 분들에 대한 대우는 낮은데 음식은 비싸게 가격을 받는다는 생각이 있었죠. 특히 스테이크는 더 그랬어요. 가격을 낮출 여지도 있었고, 요리사에 대한 대우는 더 높일 수 있다는 게 제 생각이었어요. 너무 비싼 곳도 많으니까요. 한편으론 동네 손님들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음식도 내어주는 작은 가게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요. 20대 중반부터 가게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Q. 노말키친 이전엔 어떤 일을 했나요?
A. 음식과 관련된 준비를 많이 했어요. 가게를 차린다는 생각을 하기 전부터 요리는 좋아했으니까요. 대학 때에도 식품영양학과를 나오기도 했고, 군대 때 취사병도 했고요. 본격적으로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실전에서 요리를 배운 건 24살 때부터였어요. 대학을 휴학하고 광화문에 있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기초를 배웠어요. 1년 뒤엔 이태원에 있는 이태리 음식점을 갔는데 설거지부터 소스 만드는 것까지 A부터 Z까지 모든 파트를 맡았죠. 그러다가 캐나다에서 한식점을 준비한다는 분을 알게 돼서 체제비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가서 한식을 배웠습니다.

갈비포를 뜨거나 재우는 법도 배웠죠. 고기 유통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었고요. 대학을 졸업해야 해서 돌아오긴 했지만 좋은 경험이었죠. 결과적으로 양식, 이태리 음식, 한식까지 두루 배운 셈인데 이 경험 덕분에 퓨전양식을 하게 된 거죠. 처음엔 스테이크 가게를 생각했는데, 고기를 다루려면 더 넓은 공간이 필요한데 시작하는 가게는 워낙 작으니까 자연스럽게 퓨전으로 간 거죠.

Q. 가게는 2017년에 열었죠.
2월이었어요. 대학을 졸업한 뒤 바로 가게를 연 건 아니고, 사회생활을 해볼까 했어요. 면접을 보러다니기도 했고요. 그런데 부모님이 카페를 갑작스레 여셨거든요. 그때 저에게 200만 원 정도 월급 받는 거라면, 비슷한 돈을 벌어 갈 수 있을 테니 카페를 운영해볼 생각 없느냐고 하셨어요. 가게를 차리고 싶었으니까, 배울 게 많겠다 싶어서 맡았죠. 여길 맡게 되면서 3개월간 커피를 따로 공부하는 시간도 있었어요. 지방 아울렛에 있는 카페였어요. 세금 내고 물건 관리나 손님응대는 어떻게 하는지 배우는 시간이었죠.
일은 쉽진 않았어요. 1년 동안 닫는 날이 하루도 없어서 워낙 지치기도 했고요. 그렇게 지방생활을 한 3년 했는데 아울렛 시장이 안 좋아지면서 점점 경영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결국 저도 빚을 좀 지고 가게를 정리해야했죠. 그게 2016년까지의 일입니다.

그때부턴 음식점을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죠. 캐나다에서의 경험 이후론 고기를 풍부하게 올려주는 음식점에 대한 생각을 굳히고 있었거든요. 캐나다는 스테이크도 400그램씩 먹기도 하고, 온갖 요리에 고기를 올리거든요. 저희도 고기를 듬뿍 주는 가게를 해보자, 이를테면 이태리 파스타에 고기를 듬뿍 올려주는 가게를 하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컨셉은 분명했죠.
가게할 만한 장소를 찾아서 서울 전역을 누볐죠. 그해 12월. 한달 동안 하루 10시간씩 가게 자리를 찾아 돌아다녔어요. 집이 있는 오이도에서 출발해서 서울을 다 돌아다닌 거죠. 아침에 9시에 올라와서 밤 9시에 돌아가는 일정이었어요. 점심도 먹지 못했을 정도로 바삐 움직였어요.

Q. 어떤 상권을 찾았나요조건이 있었을 텐데요.
A, 단골손님이 쉽게 드나들고 손님과는 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작은 가게를 하고 싶었어요. 제가 하는 요리도 설명해주고요. 그러려면 골목의 작은 게가면 좋겠다 싶더군요. 이미 뜬 상권 보다는 더 조용한 곳을 찾았죠. 찾다보니 제일 마지막에 후보지가 된 곳이 망원동과 현 가게 장소였어요. 망원동은 사실 그때도 핫했죠. 거기가 좋았던 게 건물이 새 건물에 보증금도 쌌어요. 부동산이 보여준 곳은 마음에 들었는데, 상권이 너무 떴다는 게 마음에 걸렸죠. 결국 지금 자리로 선택했죠.

Q. 동네가 젊은 느낌은 아니잖아요인근에 대학이 있는 것도 아니고가게를 한다고 하니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A. 위치를 말해주니까 몇몇 지인들이 그런 걱정을 하더군요. 거기 아무도 안 다니는 동네라고요. 저도 전재산을 투자했고, 대출금까지 받았는데 계속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니까 걱정이 되지 않을 순 없었죠. 빚져서 하긴 했지만, 그래도 가게는 작은 편이고 망하면 취직을 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했더니 마음이 편해지던걸요. 마음 맞는 학교 후배가 함께 해주기로 해서 시작할 땐 자신감 있게 했죠.

Q. 이 상권에서 승부를 걸어볼 만하다고 생각한 거죠?
상권 분석을 좀 했는데 가족끼리 외식할 만한 음식점은 많았어요. 하지만 신생가게들은 많지 않았어요. 그러다보니까 젊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도 갈 만한 음식점은 없었던 거예요. 그래도 동네는 젊은 사람들이 많이 사니까 근처에서 식사하고 싶을 때 들를 수 있는 가게는 필요하다고 봤어요. 단골을 노렸죠.

Q. 이 지역의 매력은 뭐였나요?
제가 서울시민이 아니어서 그랬을까요. 종로나 강남 같은 중심지는 늘 낯설고 삭막하다는 느낌을 받아왔어요. 동네 커뮤니티의 느낌을 좋아하는데, 그런 게 남아있는 동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다른 동네에 비해 오래된 느낌도 운치가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Q. 언제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나요장사가 잘 되기 시작한 시점이 있나요?
애초에 돈을 많이 벌겠다는 욕심은 없었어요. 월 100만 원에서 200만 원 정도 벌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사실 처음엔 장사가 잘 안 됐어요. 첫날 20만 원 매출을 올렸는데 그건 지인 장사였죠. 2월에 열었는데 3~4월까지도 목표로 했던 일매출 30만 원을 못 도달했죠.
근데 반전이 있었어요. 5월쯤 근처 교회에서 한 분이 다녀가셨거든요. 그분이 교회분들을 많이 데리고 오셨어요. 그때부터 가게가 북적해지더군요. 한번은 저희 가게가 한 유명한 페이스북 페이지에 올라갔는데 그때 사람들 연락이 많이 오더군요. 그 다음날부터 대기줄이 10팀씩 생기는 거예요.
30인 분 팔기도 벅차는데 미리 준비해놓은 100인 분을 다 팔게 됐죠. 지금도 100인 분씩 준비하는데 항상 다 팔고 있어요.
다만 바빠지면서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손님과 가깝게 대화를 하긴 어렵죠.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고 그랬어요.

핫플레이스의 탄생…“예상하지 못했던 흐름”

대형 프렌차이즈 보다는 작은 상점을 선호하는 젊은층은 이곳에 발길이 머문다. 지역에서 데이트를 하려는 20대 남짓, 업무를 마치고 돌아서는 직장인들이 새롭게 생긴 마을 가게에 들른다. 점심 땐 가까운 곳을 마음 편하게 여기는 주부들이 모인다. 이전까지 수요가 없었던 게 아니라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 동네의 탄생이다.

Q. 지금은 쌍리단길로 불리죠길이 이렇게 바뀔 거라고 생각했나요?
글쎄요. 처음엔 그런 것 보다는 우리 가게만 달랑 있는 조용한 느낌을 생각한 거죠. 저희야 길 자체가 핫해지거나 새로운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건 둘째 치고 단골이나 찾아줬음 했죠. 저희 가게가 이름을 조금씩 알려질 때 반응을 보려고 SNS도 했는데 쌍리단길이라는 단어가 눈에 띄어서 그게 좀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저희도 어느 순간 인스타그램에 쌍리단길이라는 태그를 달기 시작했고요.

사실 쌍리단길이라는 단어를 처음 볼 땐 피식 웃었죠. 여기 저희 가게 말고는 철물점이나 옛날 가게 조금 있는 정도인데… 뭐가 많이 바뀌었나, 갸웃했어요. 그저 태그를 새로 만들려고 하는 말이겠거니 했죠. 그런데 저희 가게 들어서고 1년 넘게 지나니까 어느새 하나둘씩 가게가 늘어나더군요. 예상 못했던 일이죠.
장사하는 사람으로선 경쟁자가 많아진다는 게 좋은 건 아닐지도 몰라요. 그래도 가게가 많이 생긴 만큼 장사하는 분들이 뭔가 재미있는 문화를 함께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더군요.

Q.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걱정은 없습니까?
전체적으로 주택가 안에 들어와 있어서 가게들이 다 작아요. 다른 지역보다 큰 가게가 들어오기 어려운 환경예요. 즉, 골목 자체가 들어올 수 있는 가게 규모가 한정돼 있어서 상점이 바뀌거나 그러진 않을 거 같아요. 아직은 임대료도 낮은 편이죠. 하지만 앞으론 봐야겠죠.

Q. 가게를 더 확장할 생각도 있나요?
지금 하고 있는 가게를 키울 생각은 없어요. 다만 이 거리에 다른 가게를 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해요. 피자 펍(Pub)을 생각하는데, 20평은 넘어야 펍을 할 수 있는 데 자리가 마땅치 않더군요. 괜찮게 생각한 자리들이 권리금이 생각보다 비싸서 일단 이곳 말고 다른 곳도 가능성을 열어놓고 보고 있어요.

Q. 쌍리단길은 계속 커질까요망원동처럼 문화거리로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글쎄요. 가게가 늘어나면 다른 지역에서 오는 손님들도 받을 수 있어야 할 텐데…. 가게들이 작다 보니 주차장이 없어서 외부에서 오는 손님들 접근성은 떨어지거든요. 그런 제약은 있을 거 같네요.
그리고 신선한 문화를 가진 거리라는 생각이 들기 위해선 음식점 말고도 다른 콘텐츠가 필요한데 그점은 부족해요. 거리만의 특색이 아직은 갖춰지지 않은 듯합니다. 볼거리가 더 있어야 해요. 그래도 아직까진 음식점들이 메뉴가 겹치지 않는다는 점. 그건 다행이죠.


그는 10월엔 이 지역 음식점 상인들과 힘을 합쳐 동네 축제를 열기도 했다. 이태원의 음식문화를 모티브로 해서 그가 제안한 행사였다. 가게 안의 작은 커뮤니티를 생각하던 그는 그 구상을 알게 모르게 골목으로 넓혀나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기 한 젊은이는 자신이 그저 재미있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결코 의도한 것도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 생각만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주변의 무언가가 바뀌어나가기 시작한다. 그게 동네가 바뀌어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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