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룸은 이렇게 탄생했죠”

[비즈리포트] 김용후 기자 = “남자들이 만들어서 후지니까 세련되게 만들어달라”

싸이월드 창업자가 2001년 기획인력을 영입할 때 했던 말이다. 싸이월드의 창업 초창기 사업모델은 죽을 쒔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싸이월드의 외양은 미니홈피와 미니룸이 나온 2002년 들어서야 갖춰졌다. 특히 미니룸의 차별성이 두드러졌다. 그전까지 아바타를 통해 자아를 확장하는 경우는 있었어도, 나의 공간을 꾸민다는 개념은 남다른 것이었다.

싸이월드가 미니홈피와 미니룸을 발판 삼아 전국민 플랫폼으로 등극하기까지 새롭게 수혈된 인재들의 역할이 컸다. 특히 여성 기획자들의 공이 두드러졌다. 미니홈피는 싸이월드 초기 기획을 맡은 이람 당시 기획팀장이, 미니룸은 디자인을 맡은 박지영 당시 미니룸 프로젝트 매니저(이후 디자인팀장)가 기획하고 이를 구현한 것이다. 당시 둘 다 20대에 불과했지만, 미니홈피와 미니룸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총괄했다. 서울 홍릉의 작은 동아리방에서 시작한 작은 스타트업이었고, 사원에게 많은 것이 맡겨진 업체였다.

Q. 2002년까진 사업이 어려웠죠?

A. 투자를 받아 운영하는 회사니까, 아무리 좋은 서비스도 수익을 낼 수 없다면 자선 사업이나 다름없겠죠. 좋은 서비스는 기본이고, 수익을 내야 한다는 미션이 늘 꼬리표처럼 따라 다녔습니다. 선물하기와 미니홈피 꾸미기 아이템 등을 론칭했지만 성과는 미미했고, 추가 투자 유치도 힘들어졌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웹사이트 구축 솔루션을 기업에게 판매하는 부서도 생겨 수익이 나긴 했지만 서비스 회사에서 언제까지 솔루션 판매에 의존할 수는 없었어요. 실제로 재정 상황도 안 좋아져서 월급을 3개월 동안 절반만 받은 적도 있을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박지영 전 싸이월드 디자인팀장)

투자금이 고갈되던 2002년 2월. 싸이월드 내에선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감에 프로젝트가 하나 시작됐다. 새 프로젝트를 완료하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여유자금 등을 고려할 때 2개월 정도였다. 기획부터 디자인, 개발에 이어 이를 모니터링까지하는 기간이었다.

더구나 그 프로젝트는 싸이월드만의 감성과 콘셉을 담고 있는, 새로운 공간 꾸미기 모델이라는 점에서 회사의 명운을 건 것이었다. 훗날 미니룸이라고 불리는, 감성 집약적 공간이었다. 당시 미니룸을 만들 당시 프로젝트 매니저를 담당했던 박지영 전 싸이월드 팀장을 인터뷰했다. 당시 두 달 짜리 미니룸 기획과 개발 프로젝트를 맡았던 이들은 박지영 당시 프로젝트 매니저를 비롯해 5명의 소규모 그룹이었다.

박지영 전 팀장은 싸이월드 미니룸 기획을 맡았던 인물로 덕성여대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한 뒤 1999년 싸이월드가 창업한 해에 웹 디자이너로 합류한 인물이다. 동시에 당시엔 드물게도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디자인을 독학으로 배웠다고. 그렇게 싸이월드에 합류한 뒤엔 27살 때 싸이월드 미니룸 프로젝트를 맡아 기획했고, 이때 성과를 인정받아 29살이던 2004년엔 대기업 SK커뮤니케이션즈(싸이월드를 2003년 인수했다)에서 부장으로 승진한 스타 기획자다.

싸이월드 미니룸은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싸이월드란 공간은 당시 이를 만들던 이들에겐 어떤 의미였을까.

인간적인 싸이월드 모델을 유지 위해서 아바타 모델은 포기

“당시 싸이월드의 수익 모델은 프리챌처럼 자기가 직접 아이템을 사서 꾸미는 컨셉이 아니고 친구에게 디지털 아이템을 선물해 주는 형태였습니다.”

초창기 싸이월드는 지인에게 선물을 사주는 상점이 유일한 수익창구였다. 한계가 뚜렷했다. 싸이월드에 훈수를 뒀던 이들도 그점을 지적했다. 왜 프리챌처럼 하지 않니? 그 시기 프리챌이 보여줬듯이, 디지털로 옮겨온 소비대중은 자신의 아바타를 꾸미는 데엔 지갑을 열었다. 남을 위해선? 아니었다. 수익성면에선 치명적인 한계였다. 싸이월드가 고민할 수밖에 없는 지점이었다. 새로운 수익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커졌던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가장 쉬운 방법은 아바타를 사업모델에 붙이는 것이었다. 그러나 싸이월드만의 컨셉과 감성을 담아내려면 아바타 꾸미기 모델로 가선 안 된다는 게 팀원들의 생각이었다. 당시 싸이월드는 실명 기반의 커뮤니티 모델을 지향하고 있었다. 반면 아바타 모델은 익명성과 채팅 기능 등을 연상시켰다. 섣불리 아바타 모델을 붙였다간, 홈페이지의 기능과 컨셉이 흔들릴 가능성이 적지 않았다는 뜻이다.

싸이월드 멤버들은 아바타 이상의 가치를 지닌 모델. 아바타라는 개별 모델이 아니라 커뮤니티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방식을 고민했다. 아바타와 비슷한 꾸미기 모델을 추구하되, 아바타는 아닌 것. 그건 무엇이어야 할까. 싸이월드 멤버들은 머리를 싸맸다.

고민하던 이들의 눈에 띈 것이 싸이월드 개인 프로필에 적는 자기소개란이었다. 당시 싸이월드는 서명이라는 형태의 자기 프로필 소개말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이를 자기 표현의 공간이자, 소통의 공간으로 꾸며볼 순 없을까.

이런 아이디어가 팀에서 나오자 빠르게 의견들이 더해졌다. 개인소개란을 이미지화하면 어떨까. 마치 우울한 날 어두운 벽지에 비 오는 창문을 바라보는 나의 모습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자기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순 없을까. 시각화 이미지로 표현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나오면서 미니룸이라는 컨셉이 구체화됐다. 미니룸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이를 담당하던 이가 디자이너여서 가능했던 기획이다.

“아무래도 수익 모델이 디지털 그래픽 상품 위주이다 보니 디자이너 관점에서 수익 모델을 계속 생각해보게 됐죠.”

당시 싸이월드 멤버들은 미니룸이 온라인 열풍을 타고 커지던 자기 표현의 욕구를 아바타 이상으로 충실히 담아낼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아바타를 꾸미는 방식이 옷과 악세서리로 제한적이었던 반면, 미니룸은 보다 복잡한 감정까지도 방 안의 사물들을 통해 표현할 수 있었다.

게다가 미니룸은 커뮤니티로서의 속성에도 더 잘 어울렸다. 당시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이들은 저마다의 미니룸에 들러서 친구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모델을 떠올렸다. 꾸미기와 과시 욕구가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공간이었고, 아바타 모델이 가지지 못한 개성이었다. 미니룸이라는 큰 계획을 세워놓으면서, 미니미라는 독특한 아바타 시스템 또한 구상했다.

미니룸은 기획 초기부터 미니홈피 안에 들어가는 공간으로 정해졌던 만큼, 이에 걸맞는 사이즈 등을 정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기능에 집중했던 만큼 당일 기분에 따라 머리 위에 구름이나 하트 모양을 띄워놓을 수 있는, 이른바 감정 아이콘을 넣는 등 컨셉이 보다 뚜렷해졌다. 이후론 감정표현에 필요한 아이템이 무엇인지 정했고, 아이템 구매 방식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단순히 아바타를 꾸미면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상하반신이 특정한 방향을 볼 수 있도록 설정해 미니미를 움직이게끔 하고 미니룸 곳곳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상황극 등도 꾸밀 수 있게 하자는 아이디어도 나왔다. 그리고 이러한 일종의 상황극을 사용하기 쉽게, 직관적으로 마우스로 끌어서 옮겨서 한다는 게 이들의 인식이었다. 보기 좋은 것을 어떻게 사용하기 좋게도 만들 것인지, 서비스에 대한 인식도 놓지 않았다고.

다행히 초기 시안부터 이와 같은 구상을 잘 반영한 형태가 나왔다고. 첫 번째 미니룸 디자인 시안부터 당장 만져보고 싶은 모습으로 만족스럽게 구현됐다는 게 내부 평가였다. 3200만 명이 가지고 놀 인형의 집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한 달만이었다.

디자인 시안은 나왔지만, 이를 프로그램 차원으로 구현하기까지도 만만찮은 작업이었다. 당시 이를 맡은 개발진은 단 한 명이었다. 한 달 뒤. 버그가 잡히긴 했지만 꽤 그럴싸한 모양의 결과물이 나왔다고. 팀원들도 디자인으로 나온 아이템을 프로그래밍을 통해 옮기는 작업 등엔 총동원됐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결과물이 바로 수많은 젊은이들이 처음으로 독립을 꿈꾸게 되는 작은 방이었다.

처음엔 수익사업처럼 보이지 않을까, 미니룸 개설을 원하지 않는 이들에겐 이를 만들지 않도록 기능을 세심하게 세분화했던 프로젝트 팀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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