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의 아이콘? 나만의 메시지 있다” 성신제 인터뷰…청년들에게 해줄말은 바로 이것

마카롱 공방에서의 성신제 대표/비즈리포트

[비즈리포트] 안지은 기자  =

한때 개인 종합소득세만 110억 원을 내 한해 국내 개인소득세 1위를 기록했던 성신제 HS컨설팅 컴퍼니 대표(72). 한국 외식계에 ‘피자’라는 새로운 메뉴를 알리고 업계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의 시간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잘 나가던 피자프랜차이즈 사업이 무너지고 이후로도 여러 번 실패를 겪었다. 성신제 대표는 지금 강남구 주택가에 위치한 작은 마카롱 공방에서 새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그리고 최근게 그는 여태까지 꾸준하게 해오던 ‘사업’과는 다른 일을 시작했다. 책을 쓰고, 젊은이들과 눈을 맞추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일이다. 

엘리트 경영인…사회 생활 초반엔 승승장구

그의 인생을 돌이켜보자. 사회생활 초반엔 승승장구했다. 그는 경기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수재였다. 학창시절 몰몬교 선교사에게 영어를 배웠는데, 이 덕분에 영어가 자연스러웠다. 그는 젊은 시절 계속 공부하는 게 목표였다고. 하지만 유학비를 마련할 수가 없어서 회사를 다녔다고 한다. 그의 첫 직장은 호남정유(현 GS칼텍스)였다. 사장 비서실 근무는 여러모로 처우가 나쁘지 않았지만, 그는 다소 심심한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내 해외를 누비고 싶다는 생각으로 무역회사인 삼화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삼화가 부실채권으로 인해 무너지자 회사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이참에 성 대표는 자신의 사업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우여곡절 끝에 마련한 회사는 주방용품 수출 회사였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주방용품을 대량으로 살 것 같은 회사들을 수소문하고 찾아다녔다. 미국 피자헛 본사에서 한국 사업권을 신청한 것도 처음엔 프랜차이즈 오너가 되면, 피자헛 본사와 인맥을 쌓고 주방용품도 팔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젊은 시절의 성신제 대표

당시에도 한국 사업을 두고 대기업들도 군침을 흘렸지만, “직접 위생점검을 하고 청소도 하겠다”고 공언한 성 대표에게 사업권이 넘어갔다. 1984년이었다. 그무렵엔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외식을 할 만한 식당이 없었다. 그러나 소득수준은 높아지던 때다. 이점에서 피자헛은 가족을 중심으로 한 외식산업의 빈틈을 노렸고, 이게 적중한 것이다.

한국인의 입맛을 분석해 불고기 피자 등의 신메뉴를 내놓은 것도 성공요인이었다.

당시 한국피자헛은 외식산업 최고 우량기업이었다. 그가 직접 매장을 돌아다니며 일일이 운영상황을 파악했고, 저돌적으로 사업을 확장시킨 덕분에 매장은 52개까지 늘었다. 그는 서울 양재동에 100평 대 빌라를 소유하고 있었고, 역삼동에도 88평대 빌라를 가진 기업인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1993년 미국 펩시코에서 직접 한국피자헛을 운영키로 하면서 피자헛과 결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빼앗기다시피 한국피자헛 사업권을 내주었다.

매각 대금은 320억 원. 그의 그해 소득세는 110억 원으로 국내 개인종합소득세 랭킹 1위에 이름을 올렸다.  

성신제피자로 재기하나 했지만…뜻밖의 변수가 잡은 발목

그는 치킨 프랜차이즈 등을 시도했으나, 1997년 외환위기 등을 겪으면서 시작도 제대로 해보기 전에 좌초됐다. 결국 돌고돌아 그가 택한 길은 자신이 가장 잘 한다고 여겼던 피자였다. 피자헛을 의식해 ‘피자 독립선언’이라는 캐치프라이즈를 내세웠다. 한국 토종기업이라는 점을 부각하는 한편, 담백한 맛을 강조하는 전략을 택했다. 매장수는 22개까지 늘어났고 재기에 완전히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전에 치킨 브랜드 사업을 하려다가 남긴 20억 원 채무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이전 치킨 프랜차이즈 사업을 정리할 당시 한 회사에 20억 원 채무를 지고 있었어요. 이를 전액 상환했는데, 성신제피자 사업이 잘 나갈 무렵인 2000년대 중반 다시 상환 요청이 왔어요. 이미 다 갚았다고 생각했으니 의외였죠.” 성 대표에 따르면, 해당 업체로부터 불어난 이자에 대해서만 상환했을 뿐이고 원금을 갚지 못했으니 이를 다 갚으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그 상환 요구액 규모가 76억 원이었다고. 해당 회사는 론스타 계열사였고, 그는 좌절에 빠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76억 원을 갚을 순 없었어요. 채무를 지니 카드결제 등도 끊기고, 제가 버틸 재간이 없었어요.” 결국 그는 14억 원을 주고 송사를 마무리했다. 그는 지금도 사업을 하면서 재무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점이 가장 후회가 된다고 했다. 사업 하는 이들에게 계약 문제를 꼼꼼히 잘 살피라고 말하는 것도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사업을 마무리 한 이후엔 간암, 폐암 선고 등을 받았다. 한 개인으로서 처절한 시련이었다.

그래도 계속 도전하는 이유 … “그게 나다”

그럼에도 그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찾아나섰다. 지지스컵케잌 브랜드의 한국 사업권을 따내는 성과도 거뒀다. “제가 가장 잘하는 게 밀가루 다루는 거니까, 컵케잌을 했죠” 그러나 해당 본사에서 글로벌 사업 철수 결정을 내리면서, 또 다시 그의 사업은 실패했다. 지지스컵케잌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기 위해 배워온 기술로 그는 지금 서울 강남구의 한 매장에서 개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배달사원은 아내다. 그 스스로도 작은 공방 수준이라고 말하는 가게다. 사업은 실패했지만 그는 쉬지 않고 일을 하면서 다음 스텝을 생각한다.  

성신제 전 성신제피자 대표 제공

건강문제와 사업 실패 등을 겪었지만,  이와 같은 시련이 그의 의지는 꺾지 못했다고. 좌절을 겪었다는 이유만으로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고 했다. “사업을 왜 하냐고 물으면, 전 그게 나라고 대답해요. 전 일을 해야하는 사람이예요. 이렇게 또 나와서 내 일을 할 겁니다.”

그의 매장엔 가끔 젊은이들이 조언을 구하러 오기도 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 때문에 답답해하는 청년들을 보면서 그는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한국에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유독 큽니다. 낙오한 인간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리니까요. 그러니 청년들이 이렇게 불안해하는 겁니다. 실패해도 괜찮아요. 1등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가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한때 그도 좌절을 겪었지만 누군가에게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서 도전한 것은 가치가 있었다고 회고한다. 도전으로서 분명 가치있었다. 그가 남들은 숨기기 바쁜 실패담을 공유하는 것도 실패를 용납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창의적인 생각들이 나오고, 새로운 비지니스도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넘어지면 일어나면 된다는 점을 그는 직접 보여주고 있다.  “도덕적인 해이로 인한 실패는 문제죠. 사실 그렇게 도덕적으로 흠결이 많은 실패가 우리나라에 너무 많았어요. 그러니 실패에 대해서도 나쁘다는 인식이 강해졌다고도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게 아니라면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어야 해요. 우리 사회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청년들의 실패에도 관대한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어요” 그가 실패를 통해 얻은 교훈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떠오른 결심

피자헛을 국내에 처음 들여왔지만, 글로벌 프랜차이즈 경영권을 미국 본사에 넘겨줬던 그다. 재기를 노리며 시작한 성신제피자 역시 결국 실패였다. 더 큰 시련은 없을 줄로만 알았는데. 지난해에도 큰 시련을 맞이했다. 바로 죽을 고비였다. 갑작스레 삶의 벼랑 끝을 마주했다.

그는 지난해 여름, 집에서 넘어져 뇌에 피가 차올라 뇌수술을 해야만 하는 상황을 겪었다고 회고했다. 산부인과 빼고 모든 병원을 다 가봤을 정도라는 그는 이미 두 번의 대수술을 겪은 몸이었다. 병상에 가만히 누워있는 그의 곁으로 몇 명의 의사가 다녀갔고, 그들은 차트를 뒤적일수록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수술을 위해서는 전신마취가 필요한데 과연 그의 몸이 버틸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의사는 나직하게 성신제 대표에게 말했다.

‘전신마취를 한다면 다시 못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라고.

다행히 전신마취를 하지 않고도 수술이 진행될 수 있었고, 그는 다시 일어나 세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속에서 다시 눈을 뜬 그 순간 그의 머릿속엔 하나의 생각이 가득 찼다.

“지금 이 시점에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라는 물음이 떠올랐습니다. 이미 70을 넘은 나이인데 여기서 더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맞는 걸까, 아니면 다른 일이 있는 것일까, 하고 말이죠.”

성신제 대표가 자신의 실패 경험담을 전하면서 강남구에 위치한 그의 마카롱 공방에는 드문드문 젊은이들이 찾아왔다. 대게 실패하고 삶에 절망해서 힘을 잃은 청년들이었다. 그들은 항상 그에게 물었다. 다들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라는데, 도대체 그건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이냐고. 사실 성신제 대표 역시 이 물음에 쉽게 답할 수 없었다.

“70년을 넘게 살아온 저도 확실한 답은 찾지 못했습니다. 다른 이가 볼 때엔 제가 답을 찾은 듯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지 않습니다.”

그는 절망한 젊은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명확하지 않음에 아쉬움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더욱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고, 겪어온 시간들의 순간순간을 얘기했다. 하지만 오히려 젊은이들은 그런 이야기에 힘을 얻고 앞으로 나아갔다.

“저에게 무턱대고 찾아온 여대생이 있었습니다. 커피 한 잔을 내주고 이런 저런 얘기를 했는데 표정이 조금 나아지더군요. 이후에 SNS로 소식을 주고받았는데 훨씬 나은 얼굴로 학교에 복학도 하고 취직준비도 하고 있더군요.”

그는 마취에서 깨어난 그때에 자신을 찾아왔던 많은 젊은이들의 얼굴과 그들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것이 그가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조금 덜 젊은이가 조금 더 젊은이에게 할 수 있는 말

“병상에 누워서 결심했습니다. 앞으로는 내가 겪어온 이 이야기를 젊은이들과 나누며, 제가 희망을 얻을 수 있었던 ‘읽고, 쓰고, 걷는’ 행위에 대해서 알리고자 결심했습니다. 지금 텀블벅에서 진행하고 있는 ‘괜찮아요’ 프로젝트가 그 시작입니다.”

읽고, 쓰고, 걷고… 희망을 얻을 수 있는 일상의 작은 실천

성 대표는 지금까지 4권의 책을 출간했다. 대게 그가 가지고 있었던 경영 노하우나 창업지식을 공유하는 서적이었다. 그는 텀블벅 출간을 기획하면서 지난날에 집필했던 책들을 되돌아봤다고 말했다.

“4권의 책에서 저는 제 눈높이에서만 말을 했습니다. 나의 글을 읽는 이들과 눈높이를 맞추지 않았죠. 내가 가진 노하우를 전하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조금 덜 젊은이가 조금 더 젊은이에게 하는 말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한 이후로 성대표가 가장 먼저 결심한 것은 나를 낮춰 시선을 마주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진정한 소통의 시작이었다.

새로운 책에서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풀었다. 이런 일이 있었고, 저런 일이 있었다, 라면서 성대표의 학창시절과 일상을 부드럽게 녹였다. 무엇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라기 보단 같이 앉아 가볍게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일어설 수 있었던 힘을 전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작은 씨앗을 준비했다.

기성세대로써 마땅히 해야 할 일

“우리나라는 굉장히 급속하게 성장한 나라입니다. 6.25 동란 이후에는 우리나라는 너무 힘든 상황에 놓였습니다. 그래서 모든 국민이 앞만 바라보고 달렸습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어깨를 더 내밀고 달렸고, 다른 이를 밀치며 그 이가 넘어 뒤쳐져도 돌보지 않았죠. 그게 계속 반복되다보니 어느새 이 사회는 양극화가 심해지고, 뒤쳐진 이들에겐 실패자라는 딱지가 붙기 시작하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이었습니다.”

0.1%나 0.5%만 살아남고 승리하는 시대이다. 나머지 99.9%의 뒤처진 이들이 훨씬 많음에도 그들에겐 아주 기분 나쁜 실패자란 딱지가 붙었다. 성신제 대표는 더 이상 이 굴레를 지속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기성세대와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다음세대를 만들어야겠다’ 그게 이 나라의 혜택을 받은 기성세대로써의 할 일이라고 느꼈다.

성신제 대표는 다음 세대를 위해 준비할 것은 새로운 교육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은 그렇지 못했다. 몇 년에 한 번 교육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아이들의 교육 근간은 흔들리고,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흔들리지 않는 교육 방식을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공방 한켠에 마련된 책상에서 읽고, 쓰는 성신제 대표

읽고, 쓰고, 걷자

“읽고, 쓰고, 걷는 아이들은 기성세대가 만든 시스템에 흔들리지 않을 겁니다. 뇌가 굳지 않고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아이들일테니까요.”

그가 말하는 읽고, 쓰고, 걷기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아무거나 읽고 싶은 것이라면 읽고, 쓰는 것도 짤막한 한 줄, 메모만이라도 남기면 되는 것이다. ‘쓰기’란 행위는 나의 생각을 기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나중에 다시 그 것을 봤을 때 우리는 당시의 내 생각을 마주 할 수 있다. 걷기 역시 일상 속의 걷기이다.

“최근에 걷기에 관련한 책을 몇 개 봤어요. 사람들이 걷기 위해서 하와이에 가고, 스페인 순례자의 길에 가더군요. 제가 생각하는 걷기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냥 집 앞 공터나 공원을 생각날 때마다 걷는 것이지요.”

성 대표는 건강상의 이유로 걷기 시작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걷다보니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한다. 풀리지 않을 것 같던 답답한 문제의 답을 얻고, 예상치 않은 해결책을 얻었다. 단순히 걸었을 뿐인데도 말이다. 그는 자신의 이런 시간들을 젊은이들과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 제가 실패의 아이콘이 되고나서는 어떤 이들은 제 말을 귀담아 듣지 않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저는 이 이야기를 꼭 전하고 싶다고 느꼈어요. ‘읽고, 쓰고, 걷자’. 절망한 젊은이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우리나라의 다음세대가 좀 더 달라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biz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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