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승 인터뷰 “몽키호테 정신으로 버텨냈습니다”

서울 독립서점 책인감에서 강의활동을 펼치는 이원승 대표/책인감

[비즈리포트] 이명섭 기자 = 방송인 이원승은 많은 이들에게 추억의 이름이다. MBC 주요 개그 프로그램에서 다른 개그맨들과 호흡을 맞췄고, 1990년대 연극으로 영역을 넓힐 때에도 예능 등으로 얼굴을 알렸다. 원숭이 연기를 잘 하는 개그맨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는 1998년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피자가게 디마떼오를 열고 장사로 방향을 틀면서, 방송에선 한동안 모습을 감췄다.

그런 그가 지난달 19일 서울 노원구의 독립서점 책인감에서 특별한 강의를 열었다. 자신의 좌절과 극복 스토리를 다룬 책  <피자 한판, 인생 두판>에 담긴 이야기를 독자들과 나누는 자리였다. “작은 공간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의 의미를 최근에 많이 되새기고 있어요. 불러주는 독립서점이 있다면 가서 사람들을 만나고 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그는 이날 ‘도전은 아름답고, 누구나 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책인감 제공

그는 유머감각도 잊지 않았다. “저 몽키도 해냈습니다. 긍정과 낙관을 가진 몽키호테의 정신으로 도전해보세요.” 몽키호테는 그가 원숭이와 돈키호테를 합쳐 만든 조어다. 시종 유쾌한 것처럼 보이는 이원승 디마떼오 대표는 사실 큰 좌절을 겪었다. 어떤 이야기일까. 이날 강의와 그의 책, 그리고 강의 이후 진행한 전화 인터뷰를 토대로 그의 인생담을 돌이켜보자.

몽키호테의 도전…하지만 처음엔 큰 시련

그는 고교 때부터 고향인 대전에서 연극을 해 이름을 알렸고, 중앙대 연극영화학과 출신으로 촉망받는 배우였다. 그는 1982년 제2회 MBC 개그 콘테스트 동상을 수상하면서 개그맨으로 방향을 돌렸고, 청춘만만세 등의 프로그램에서 탁월한 연기 감각과 원숭이를 비롯한 동물연기를 통해 명성을 쌓았다. 1990년대 초반엔 개그맨을 그만두고 본연의 길이라고 여겼던 연극무대로 돌아와 활약했다. 이후엔 방송인으로 활동영역을 넓혀 다양한 예능에 출연했다.

1997년 이원승 대표가 출연한 도전 지구 탐험대 방송 화면 캡처/출처 KBS

그의 인생 항로를 바꾼 프로그램을 만난 것도 주전공인 개그와 연극 무대가 아닌 다른 예능 방송이었다. 바로 “도전 지구 탐험대”였다. 1997년 그가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100년 동안 운영한 화덕피자 가게에서 일을 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그는 이때 화덕피자의 맛을 보고 “이건 한국에서 해도 대박이겠는데”라고 생각했다고.

도전 지구탐험대 이후에도 집요하게 방송으로 인연을 맺은 나폴리 화덕피자 가게에 비법을 전수해달라며 매달렸다. 이탈리아로 비행기표를 끊고 다짜고짜 찾아가기도 했다. 피자 가게 주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주인 지인의 결혼식에서 팬터마임을 하는 등 각고의 노력 끝에 해당 피자 라이선스와 기술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이듬해 연 가게가 바로 디마떼오다.

책인감 제공

디마떼오를 시작할 당시 그의 수중에 있었던 돈은 7000만~8000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여기에 1억 8000만원빚을 얻어 오픈한 자리가 지금 서울 혜화동이었다. 빚도 적지 않았고, 큰길가가 아닌 소극장 옆자리에 피자집을 개업한다는 소식에 지인들은 그를 뜯어말렸다고 한다.

그래도 맛에 자신이 있었으니까, 쉽게 성공하리라 생각했다고. 하지만 이는 오산이었다. 그는 “한때 자살을 생각해야 할 만큼 큰 실패를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미국식 또는 일본식 피자에 익숙했던 대중의 입맛과는 차이가 있었던 것. 얇은 피자 도우 등을 보면서 외면하는 손님이 적지 않았다. 비싸더라도 좋은 제품을 쓰겠다며 이탈리아에서 원재료를 공수해오는 것도 장사가 되지 않을 땐 큰 부담이었다. 39살의 나이에 그가 떠안은 빚은 1억 8000만 원. 그는 이혼 등을 겪으면서 자살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하루하루를 새로운 마음으로 살기로…각오 다져

그는 자살하기 직전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고. 모든 것을 내려놓기 직전이었다. “잘 살라”는 그의 말에, 그 친구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생쇼하지 말고 7시 반에 만나.” 전화가 툭하고 끊어지는 순간, 제정신이 돌아왔다고. 힘들 때 손잡아주고, 자신을 독려해준 친구의 모습이 스친 것이 그때였다. 자신의 실패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그 자신의 성공도 실패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긴 것이다. 그는 절망의 진창에서 빠젼와 다시 제대로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그는 그날 이후 전화도 없애고, 머리도 빡빡 깎았다. 새롭게 살아보겠다는 다짐의 표현이었다. (책인감에서 진행한 강연 이후 그와 나눈 전화 인터뷰는 가게 전화로 이뤄졌다.) 다른 생각이 들 때가 되면 그는 자살을 생각했던 그 시절을 돌이킨다고 한다. 비싸더라도 제대로 된 재료만 고집하는 건 지금도 여전하다.
그의 고집이 알려지고, 이탈리아 음식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지면서 그의 사업은 이내 다시 반석 위에 올랐다고 한다.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 등이 이 집의 단골이었을 정도로, 유명인이 많이 찾는 음식점이 됐다. 연 매출은 13억 원 수준에 이른다.

“2050년에 제가 제 삶을 돌이켜볼 때 제 인생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지금의 제 모습에서 후회할 것들이 적지 않을 거예요. 마치 터미네이터가 과거로 돌아가듯이, 그때 과거로 돌아온 모습이 지금 저라고 생각해보게 돼요.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제가 지금 무슨 일을 해야할지 기준이 생기더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그는 자신을 터미네이터와 같다고 말한다. 몽키호테와 터미네이터. 그가 스스로 자신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라고 꼽은 것이다. 그는 마치 연극 무대에 선 것처럼 인생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연극에서도 인생에서도 한 번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다. 그것이 라이브의 현장성이다. 그는 이 원칙을 또렷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인생 항로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남들이 하지 말라고 하는 것들은 기어이 하는 모습이다. 비교적 성공가도를 달렸던 개그에서, 그의 표현에 따르면, 빠르게 ‘조퇴’했고 방송 생활도 접고 피자사업에 올인했다. 남이섬에서 연극 활동도 펼치고 있다. 그러한 도전은 어쩌면 실패의 가능성을 품은 것이기도 하다. 이를 알고도 도전하는 것은 과연 돈키호테의 모습이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도전한다는 말이 과연 의미심장하다.

“저 몽키도 해냈습니다.”(웃음)

그가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그가 버틴 인생의 무게처럼 가볍지 않은 메시지다. 실패에 빠진 사람들을 위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위기에 닥치면 막막한 동굴에 들어섰다는 생각이 들지요. 하지만 동굴이 아니라 터널예요. 그렇게 생각하시면 언젠간 나올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겨요. 지금 앞이 안 보인다고해도 멀고 긴 터널일 뿐예요. 들어온데가 있으면 출구도 있습니다.”

그가 재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가 화덕피자의 좋은 재료라는 원칙을 지킨 덕분에 성공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소신이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소신을 가지고 이를 지키려는 태도는 중요하다. 그것은 긴 터널을 버티게 해주니까. 그의 삶이 가르쳐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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