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 충성을 다할수록,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다…회사가 전부인 직장인의 12가지 패착

게티이미지뱅크

<이직스쿨 김영학 기획자>

모두들 일을 한다. 일을 하기 위해 직장에 들어가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인다. 그리고 그 일이 인생에 매우 중요한 것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어느 순간 직장에서 계속 해왔던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른다. 누구든 겪는다. 그런 이들 중에 가장 최악은 회사가 만든 세계관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같이’

그리고

‘따로’ 일하고 있다

직장생활은 외롭다. 대다수가 자신이 바라던 직장을 가지는 일도, 함께 하고 싶은 동료를 내가 선택할 수도 없고, 그 안에서 하고 싶은 일을 벌이기도 쉽지 않다. 내 뜻대로 살기에 척박한 환경이다. 점심시간 조차 정해진대로 움직여야 하니,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 그냥 닥치고 일이나 하련다.


돌이켜 보면, 일에 대한 생각을 바르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일과 삶의 분리라기보다는 직장 속에 내 일(Job)이 무엇이고, 그 일이 가지는 가치(Value)와 앞으로의 성장성(Development) 등에 대해 말이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당장 떨어지는 각종 업무에 생각이 흐릿해짐을 느낀다. “일단 일(work)부터 하고, 천천히 생각해보자.” 그러나, 늘 말 뿐이다. 생각은 도돌이표처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버렸다.

늘 시간에 좇겨 일하는데, 일이 늘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일에 ‘잘못된 중독’이 되면, 일에 갇히고 혼자가 된다. 그렇게 남겨진 직장인과 일은 평행선을 긋게 된다. 그리고 멈추지 못하고 일을 좇아 계속 달리다, 막다른 절벽에 다다른다. 그 어디도 갈 수도 없는 상태. 뒤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고, 앞으로 가면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우리는 일을 하고 있지만, 실력보다 엉뚱한 것들이 더 많이 쌓인다. 일을 어떻게 하면 망가뜨리지 않을 수 있는지에 대한 ‘관리력’ 같은 것 말이다. 이를 역량이라는 범주에 넣어야 할지 말지는 개인의 선택이지만, 우리가 사는 지금은 흔하디 흔한 관리자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에 이 또한 쉽지 않다.


우리는 어쩌면 조직에 따르다 보니, ‘일이 가진 본질’로부터, 스스로를 멀리 두고 있는지도 모른다.


일과 함께 한다고 생각 하지만, 일과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단 일을 해야만 먹고살 수 있고, 열심히 일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는데 말이다. 여기서 그만둘 수 없어, 일단 열심히 한다. 그런데, 일을 그렇게 수년 동안 대했던 내 생각과 태도가 스스로를 옥죄는 일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직장에 중독되고

빠져나오면서

겪어야 할 12가지 절망감

우리는 일과 직장, 어떤 것에 더 많은 중독이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자의 반 타의 반 그곳을 정리하고 나올 시점에 깨닫고 절망한다. 직장 바깥은 지옥이라고 했거늘, 그 지옥에 다다르기 전에 지옥에 나갈 충분한 준비가 되지 않았음에도 절망감은 그전부터 밀려오기 시작한다.




<조직에서 나오기 전>
 – ① 심각한 일 중독에 빠져있다

이렇게 일하는 사람은 없겠죠
일과 조직 어떤 것에 빠져있는지, 판단 조차 불가능한 상태이다. 내가 지금 하는 일(Job)이 어떤 가치를 지녔고,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는지 판단 가능한, 일정 수준 이상의 전문성을 가졌다면 일(직무)에 가까운 것이다. 반대로 조직에 국한되어 있다면, 단순한 Worker-Holic일 가능성이 높다. 
**후자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조직이 주었던 수많은 일(임무)을 처리하는 것에 중독되었고, 그 일들에 대해 상당히 숙련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② 일이 만들어준 ‘말’에 갇혔다

이 말들이 조직과 만나서 다른 영향력을 낳는다
같은 말이라고 해도, 조직만의 뉘앙스로 늘 ‘말’을 하기 때문에, 그것이 최선이자 전부라고 생각한다. 사용하는 언어는 그들의 생각을 지배함과 동시에 통제한다. 같은 말을 해도 조직 바깥의 사람과 대화를 할 때는 늘 막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우리가 소통이 잘 되지 않는 이유는, 간혹 그들 각자가 쓰는 말로부터 온다.
**간혹 한 분야에서 오래 일을 한 사람들을 만나보면, 현장에서 사용하는 용어에서 조직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경우가 많다. 이미 말 뜻의 전부가 특정 영역에 갇히게 되면, 생각 또한 함께 갇히고, 결국 관점이 굳어진다.


 – ③ 일로 만난 사람이 전부가 된다 

8시간 이상씩 붙어있다보면 미운정, 고운정 다 들어버렸다
‘사람’도 말과 마찬가지로, 우리 주변을 감싸는 요소 중 하나이다. 문제는 중요도만큼 ‘위험성’을 거의 감지 못한다. 직장 속 사람들과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그들과 보조를 맞추며,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고받게 된다. 처음에는 조직에 적응하는 모습이 스스로 대견스럽지만, 만연되고 나서는 변화는 거부하고, 주어진 일만 하는 내가 욕했던 누군가처럼 행동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이 잘못이라기보다는, 넓은 세계를 경험하지 않고, 스스로 좁은 영역에 방치한 것에 더 큰 잘못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절대다수의 사람들과 친해질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이를 의지에 따라 넓히려는 노력은 필요하다.




 – ④ 일로부터 얻는 행복이 인생 최고ㆍ최대의 행복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일의 범주 및 중요도가 스스로의 전문성보다는 조직 성과에 국한되어 있다. 그래서 조직이 잘되는 것이 곧 내가 잘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그게 일(Business)이 잘 되는 것이라 착각한 나머지, 그 ‘잘 됨’에 취하게 된다. 물론 그 공(功)에 대한 개인 지분은 있을 수 있지만, 전부 내 소유가 아니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한다.
**일을 처음 경험하고 배웠던 관점이 「개인보다는 조직을 우선시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문제는 시작되었을 것이다. 소속된 조직이 잘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내 실력 또는 전문성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지는 생각해 볼 문제이다.


 – ⑤ 일로 얻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 하지만, 어렵다

다시 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지만, 날지 못한다
어느 순간 잘 되던 일이 막히는 경험을 한다. 같은 수준과 내용의 Input과 Process 정도면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판단 자체가 틀렸다. 시간이 지나 조금씩 일하는 상황과 환경은 변했음에도, 여기에 순응하고 따라가려는 노력, 그 이상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늘 똑같이 대처했던 내 자신이 원망스럽게 느껴진다.  
**증가된 업무 환경상 불확실성은 더 이상 관리 및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 된다. 그동안 좋은 인프라의 영향이 컸음에도 이를 인정 및 고려하지 않고, 내 방식대로 혹은 조직이 시키는 데로 의심 없이 일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 ⑥ 일을 지속하고 싶지만, 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직감이든 통보든, 어떤 식으로든 알게 되면 너무나 서글프다
나오기 직전에 겪는 최종의 절망감이다. 스스로 조직 내에서 무능함의 끝을 경험하고, 내가 했던 일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소외감은 사라진 조직 속의 존재감뿐 아니라, 그동안 조직에서 보냈던 여러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끊임없는 후회가 밀려온다. 
**조직에서 가졌던 생명력은 이미 그 생을 마감한 상태이다.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이미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그저 나를 대체할 누군가에게 몇몇의 노하우를 넘겨주는 일뿐이다.
 
만약, 조직의 묵은 때와 내 성과를 구분하여, 나만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면, 혹은 퇴사 이후의 삶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도록 준비했다면 다행이다. 하지만, 대부분 조직을 나온 직후의 절망감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나를 엄습해온다. 불안감과 함께 말이다.


<조직에서 나온 직후>
– ⑦ 일이 만들어 준 ‘세계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혹시 그들이 나를 구하러 오지 않을까
말과 사람, 두 요소가 만들어낸 세계관은 좀처럼 끊어내지 못한다. 잊을만하면, 삶 속에 침투하여 새로운 일도, 그 속의 사람과 말을 배우는 것도 방해한다. 했던 일(Job)과 유사한 업무를 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전혀 다르거나 또는 업무적 성격상 차이가 있다면, 세계관이 가진 관성에 의해 꾸준하게 영향을 받는다.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는 말처럼, 사람은 특정 영역에서 오래도록 얻은 경험을 쉽사리 뿌리치지 못한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세상을 정의하고 해석한다. 따라서, 이를 어떻게 하면 잘 활용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더욱 현명한 방향일지 모른다.  


– ⑧ 더 이상 어딘가의 소속이 아니라는 것에 자괴감이 밀려온다

이제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해야 하나….
소속감 하나로 살아왔다. 그게 무엇이었든 가지기 위해 노력했고, 가진 이후에는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문제는 어딘가에도 소속되지 못했거나, 내가 원하는 곳에 선택(소속) 되지 못한다는 것으로부터 처음 느끼는 감정을 갖게 된다. 그리고 한 없이 자신을 괴롭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함께 밀려온다.
**수년 동안 온전히 ‘나라는 사람’으로 살아보지 못했기에 나타난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대신에 이를 빨리 바로 잡고, 새로운 세계관을 흡수할 준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무소속에 대한 자괴감부터 빨리 털어내야 한다.


– ⑨ 모든 것이 생소해져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금 보이는 것이 진실일까….?
어딘가에 익숙해져 버린 내 모습 때문에 나타난 또 하나의 부자연스러움이다. 일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보수보다는 진보라고 했지만,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져 버린 상태이다. 몸도 이미 수년의 세월을 거쳐 예전 상태가 아님을 직감한다. 그리고 새롭게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이제는 불편하고 거추장스럽다.
**익숙함이 생소함을 늘 이기는 모습이다. 자신이 해왔던 일과 주변 요소로 인해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자칫 진짜 슬럼프에 빠질 수 있다. 조심 또 조심이다. 


– ⑩ 일을 처음 경험하고, 익숙해졌던 방향 및 방법이 아니면 무엇이든 쉽지 않다 

이 장비로 고칠 수 있을까
일(Task와 Job 사이)은 스킬이 전부가 아니다. 그 일을 대하는 철학과 태도를 통해 스킬의 완성도가 결정된다. 따라서, 최초 일을 배우고 익힐 때 만들어진 일에 대한 태도가 다른 일(행위)을 할 때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문제는 일을 오래 하면서 만들어진 고착화된 생각과 태도가 새로운 학습을 끊임없이 방해한다.   
**일과 삶을 분리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자신의 일도 제대로 안 하는 이가, 돈을 준다고 열심히 할까 혹은 지속할 수 있을까.” 말이다. 그만큼 어떤 일이든 ‘진정성(integrity) 있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 ⑪ 그 무엇도 쉽게 믿을 수 없게 되고, 결국 소심해진다 

멍하니 서서 멈추고,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모든 것이 생소하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잔뜩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된다. 새롭게 하게 될 일, 그 속에서 마주치게 될 여러 사람과 상황에 대해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어쩔 수 없다. 그저 이전에 입었던 상처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에 과감한 시도는 하지 못하고, 어느덧 소심해진 나를 발견한다. 
**의심은 또 다른 의심으로 전이되고, 어쩌다 보니 새로운 것에 소극적이거나 소심해진 태도로 변질될 수 있다. 스스로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주변에서 변해버린 나를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으니 미리 조심해야 한다.  


– ⑫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다 

이 차를 타면, 돌아갈 수 있을까
타임머신이 있다면…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그걸 타고 이전에 내 전성기로 돌아가, 당시의 선택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커진다. 그러나, 절대 그럴 수 없다. 지금의 위치와 상태를 인정하고, 최대한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뿐이다. 문제는 적응을 위한 노력 자체가 부자연스럽다고 스스로 느끼면서부터다.
**누구나 후회를 한다. 하지만, 그걸 일시적 분노, 슬픔 등의 감정으로 묵혀 두고 쉽게 꺼내지 않는다. 자칫 삶 전체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절대 그러지 않아야 한다. 주화입마나 마찬가지다. 

절망 속에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일만 하다 보니, 회사가 전부였고, 그 안에서 해볼 수 있는 것이 거의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가 만든 과정보다 결과에 의해 평하는 것에 익숙해져 성과와 실적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내가 쌓은 실적 위주로 스스로를 평가하면서 평가절하가 시작되는 것이다.

꼭 해야 하는 것을 위해 보다 절박해진다면 가능할까
절망 속에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이전에 내가 했던 일의 정리가 필요하다. 각각의 활동이 가지는 가치와 함께, 그동안 해왔던 일의 화학적 결합에 의한 ‘정리 가능한 수준의 보편타당한 일의 가치’를 나만의 관점으로 재정의 하는 것이다. 단, 누구나 알아보기 쉽게 말이다.


수년 동안 한 분야에서 일을 해왔으면, 적어도 그 분야를 가지고 뭐든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를 기반으로 앞으로 더욱 매진하거나 최선을 다해서 그 수준을 높이려는 ‘특정한 나만의 영역’을 발견하는 것이다.


희망을 위해서는 다른 방법은 없다.
내가 했던 일을 기준으로 전문성과 가능성을 새롭게 재발견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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