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세진컴퓨터랜드…평생 무상수리, 무상교육 약속 못 지키고 무너진 이유

[비즈리포트] 김용후 기자 bizreport@naver.com=18년 전 국내 컴퓨터업계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던 세진컴퓨터랜드를 기억하는지? 1995년 전국으로 유통망을 확대하는 데 성공했으나, 이듬해 매출 목표에 미달하면서 경영권이 넘어갔고 4년 뒤 파산했으니 결과적으로 제대로 운영된 시기는 3~5년 정도에 불과하다. 

당시 유통 판도를 뒤흔들면서 빠르게 확장했으나 내외부서 불안 요소가 닥치자 허무하리만큼 쉽게 무너졌다. 짧은 전성기에도 세진컴퓨터랜드가 많은 이들의 뇌리 속에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 부산의 5평짜리 컴퓨터 판매점, 5년만에 매출 2000억 원 기업으로  

세진컴퓨터랜드는 1990년 부산에서 5평짜리 조그만 컴퓨터 판매점으로 시작했다. 1995년 5월 대구와 대전에 대리점을 내면서 확장세를 이어가더니 서울 진출까지 성공한다. PC 보급이 확장세에 접어들 것으로 내다보고 과감하게 가격파괴 정책을 내걸었던 것이 주효했다.

세진컴퓨터랜드의 상징과도 같던 진돗개 모델.
주인을 찾은 진돗개 ‘백구’의 사연을 모티브로 해서 평생 AS보장 전략을 알렸다.온라인 커뮤니티

세진컴퓨터랜드가 사업을 확장했던 1990년대 중반 PC가격은 대중이 사용하기 부담스러운 200~300만 원 수준 가격으로 형성돼 있다. 개인용 컴퓨터(PC)의 보급률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이무렵 세진컴퓨터랜드는 100만 원 대 저가형 PC를 내세워 시장에서 파란을 일으켰다. 정보화 수요가 늘어나던 무렵이어서 시장에서 호응이 컸다.

기존에 고급형 PC 전략을 세웠던 대기업들도 세진컴퓨터랜드의 과감한 마케팅에 위기감을 느끼고, 저가형 PC 모델을 만들거나 가격을 인하하는 결단을 내렸다. 세진컴퓨터랜드의 등장은 업계 전반에 큰 파급효과를 가지고 온 것이다. 

유명 코미디언 강호동 씨가 모델로 나온 세진컴퓨터랜드 지면 광고

세진컴퓨터랜드는 가격 뿐만 아니라 컴퓨터 유통 전략과 판매 개념도 뒤흔들었다.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 전문매장 방식의 깔끔한 진열을 시도했고, 직원에게 친절 서비스 교육 및 컴퓨터 무상 교육 등을 진행해 컴퓨터 보급에도 일조했다.

지금만 해도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지만 컴퓨터 시장에서 가격정찰제를 확산시킨 것도 세진컴퓨터랜드였다. 

세진컴퓨터랜드 광고 전단. 온라인 커뮤니티

♦ 컴퓨터 대중화 앞장섰지만…무리한 확장이 잡은 발목

세진컴퓨터랜드는 빠른 점포 확장 전략을 앞세워 전국 단위 유통망을 갖추는 데 주력했다. 정점을 찍을 무렵엔 전국에 52개의 직영점과 258개의 점포를 운영했다. 많은 매장을 통해 PC를 공급하는 공격적인 경영전략은 세진컴퓨터랜드가 대기업들과의 점유율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승부수였다. 그러나 어느 시점엔 자본 등을 고려하지 않고 점포 확장에만 골몰하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무리한 점포수 확대는세진컴퓨터랜드를 부도로 몰고가는 악수가 됐다. 

세진컴퓨터랜드는 고급형 PC ‘세종대왕’과 보급형 PC ’진돗개’를 앞세워 매출 1조 4000억이라는 터무니없는 목표를 세우고 마케팅에 전력을 쏟았다. 그러나 평생 무상 AS와 교육 정책 등으로 인한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대기업들 또한 가격 파괴 경쟁에 나서면서 성장세가 둔화됐다. 무리한 확장에 따른 점포 임대비도 부담이었다. 1995년 하반기부터 자금난에 시달렸다. ​

세진컴퓨터랜드 경영진은 1995년 11월엔 대우통신에 지분 51%를 매각하면서까지 마케팅 및 점포 확장에 실탄을 쏟아부었다. 1996년 창업자 한상수 회장이 매출 목표인 6700억 원을 달성하지 못할 경우 퇴진할 것을 대우통신에 약속하면서 배수진을 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헤 목표치엔 1500억 원 모자른 매출 실적을 거뒀고, 한 회장은 물러났다. 

이후 대우통신은 무상AS 약속 등을 슬쩍 폐기하는 등 긴축경영에 나섰으나,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이후 세진컴퓨터랜드는 대우그룹의 해체와 맞물려 계속되는 적자에 견디지 못해 2000년 7월에 1차 부도 선고를 맞고 같은 해 9월에 파산선고를 받게 된다. 파산 규모는 약 4800억 원으로 적지 않은 규모였다.

♦ 허무하게 무너진 회사…그래도 기억이 강렬한 이유 

세진컴퓨터랜드 몰락의 교훈은 무엇일까. 자본이 뒷받침되지 않았음에도 무리한 확장과 마케팅에 물량을 쏟아부을 경우, 기업이 쉽사리 무너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시대의 트렌드를 읽고 사업 호기를 맞았음에도 잘못된 경영판단 등 여러 요인으로 말미암아 회사는 좌초할 수 있다. 세진컴퓨터랜드는 처절한 실패 사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진컴퓨터랜드는 1990년대 컴퓨터 부품 판매망을 확장해 유통 강자로 떠올랐으나 짧은 전성기를 뒤로 하고 2000년 부도를 맞으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진은 1990년대 한 세진컴퓨터랜드 매장 전경. 온라인 커뮤니티

 이처럼 짧은 전성기를 뒤로하고 무너진 회사인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아련한 추억을 주는 회사이기도 하다. 이는 가격파괴를 비롯해 혁신적인 서비스를 선제적으로 도입하면서 컴퓨터 유통시장에 큰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당시엔 복잡하기만 했던 컴퓨터 유통과정도 단순화하는 데 기여했다. 당시엔 중요한 나름 컴퓨터 대중화라는 시대적 역할을 했던 셈이다. 이는 짧은 전성기에도 오랫동안 기억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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